['기생충' 특집인터뷰 ⑥] 봉준호 감독 “칸은 이제 과거다”
['기생충' 특집인터뷰 ⑥] 봉준호 감독 “칸은 이제 과거다”
  • 유청희 기자
  • 승인 2019.06.3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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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기생충'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중산층 아파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플란다스의 개’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와 ‘옥자’를 지나 ‘기생충’까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는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것이 인간 본성의 문제든 가족이든 계급과 계층의 문제든…. 빈자 가족과 부자 가족이 조우에서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기생충’에는 봉 감독의 눈에 비친 사회구조가 투영돼 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돌아온 봉 감독을 만났다. 시차 적응이 덜 됐다면서도 표정은 유쾌했다.

10.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고 돌아온 기분이 어떤가?

잠을 못 자서 상태가 안 좋다. 적응이 됐다 싶으면 시차의 역습이 시작된다. 허언을 하거나 방언이 터질 때가 있다. 스포일러 하지 말아 달라고 해놓고, 내가 먼저 얘기를 한다. 죄송하다. 하하.

10. ‘옥자’ 때는 ‘극장에 상영하지 않은 영화’라며 프랑스 극장협회가 반발했는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아주 좋았던 것 같다.

‘옥자’ 때는 이상하게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많았다. 상영 사고도 있었고, 영화제 측과 넷플릭스가 ‘되네 안 되네’ 하면서 논쟁을 하고 있을 때 우리가 초청됐다. 다 정리한 다음에 초청하지 왜 그랬을까. (웃음) 2017년 칸의 이슈몰이에 공헌한 것으로 만족했다. 스트리밍 시스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다. 이번에는 영화 얘기를 하고 있으니 만족한다.

10. 칸에서 배우 송강호에게 무릎 꿇고 트로피를 전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는데.

몸이 너무 동글동글해서 자세가 안 나왔다. 날렵하게 각이 딱 잡혔으면 좋았겠다.

10. 수상 현장에서 마이크를 배우에게 넘긴 건 감독으로서 배우·스태프에 대한 존중의 상징적인 태도처럼 보였다.

과거의 시상식을 생각해 보면 특별하진 않았던 것 같다. 감독과 고교생 배우들 수십 명이 올라가서 축하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제작자인 곽신애 대표를 포함해 다같이 올라가고 싶은데, 본인들이 쑥스러워해서 내가 계속 같이 가자고 했다. 올라갔는데, 이 위대한 배우가 뒤에 서 있기만하면 안되니까 내가 뒤로 갔다. 그리고 원래 나는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이다. (송)강호 형님 얘기도 들어보고 싶었고, 마음 같아선 홍경표 촬영감독을 비롯해 미술감독, 현장 스태프들도 다 함께 올라가고 싶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함께하지 못한 분들이 각지에서 축배를 드는 사진을 나한테 삼삼오오 보내왔다. 인터넷이 좋긴 좋은 것 같다.

10. 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을 보고 김기영 감독의 ‘하녀’ ‘충녀’를 이야기했는데, 영향을 받았다고 느끼나?

김기영 감독님의 매니아였다. 처음 케이블TV가 생겼던 1990년대 중반, 영화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 그 분의 영화를 처음 접했다. 생활비도 없고 진짜 가난할 때였는데 나름 영화인이랍시고 유료 영화채널을 끊었다. 영화(기생충) 속 기택(송강호) 집의 3분의 2정도 되는 아파트에 살던 때였다. 반지하는 아니었지만. 그 채널 프로그램 기획자가 누구인진 몰라도 꽤나 매니악했다. 그 채널의 김기영 특별전을 처음 보곤 광분 상태가 됐다. 김 감독님은 부자, 부르주아의 욕망과 욕정, 그걸 파괴하려는 외부자 혹은 침입자를 그리는 것의 대가다. 감독님이 살아계신다면 꼭 보여드리고 싶은데…. ‘기생충’과 ‘하녀’를 동시 상영해 보면 어떨까.

10. 영화에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걸 보면서 사회 속 인간을 그린 세태주의 소설가 박태원이 외조부라는 걸 떠올렸다.

솔직히 말해서 외할아버지는 동화 속의 인물 같은 느낌이다. 우리가 이산가족인데 외할아버지는 북한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니 형제가 5남매인데, 전쟁 통에 찢어져서 외할아버지와 큰이모는 북으로 갔고 우리 어머니를 포함한 4남매가 남한에 남았다. (외할아버지가)유명한 소설가라는 이야기를 듣다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보고 신기하긴 했다. 사진을 보면서 ‘나랑 비슷한 구석이 있나?’ 스스로 묻곤 했는데, 내가 봤을 때 닮은 점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난 아버지 영향을 더 받지 않았나 한다.

10. 아버지(봉상균)가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셨는데 어떤 영향을 받았나?

재작년에 돌아가셨는데, 항상 집에서 그림을 그리신 게 생각난다. 서가에 슥 들어가면 신기한 책들이 많았다. 외국에서 가져온 그래픽 디자인집, 사진집 이런 걸 나도 많이 봤다. 1970년대에 해외 출장을 다니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그랬다. 나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다섯 살 때부터 계속 만화를 그렸고, 만화가가 되고도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샷을 그리고 배열했다. 콘티, 스토리보드 그리는 것과 비슷했던 것 같다. ‘기생충’도 100% 내가 작업했는데, 출판사한테 연락이 와서 출간될 것 같다.

10. 아버지는 국립영화제작소 미술실장으로도 일하셨는데.

맞다.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 타이틀을 그리셨다고 한다. 꼬마 안성기가 실뜨기를 하고 있고 그 위에 ‘하녀’라고 타이틀이 내려온다. 오래 하시지는 않았는데 영화인들을 많이 접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하하. ‘애들이 좀 거칠더라’면서. 무서우셨나보다. 1960년대니까 기가 좀 셌을 거다. 아버지가 처음에는 영화하는 걸 반대도 많이 했다. 그 나이 부모 세대들은 원래 ‘사람은 월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나중에는 지원도 받았다. ‘백색인’의 제작비 일부를 대주셨다. 아버지가 ‘설국열차’까지 보셨는데 ‘기생충’과 ‘옥자’를 참 보여드리고 싶다.

10. ‘기생충’에도 10대 여성이 나오는데, 그동안 ‘마더’ 등에서는 섹슈얼한 이미지를 내포하기도 하고, ‘괴물’이나 ‘옥자’에서는 희생자이지만 뛰어가는 주체로 크게 나눠진다. 소녀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게 뭔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과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한다. ‘괴물’ 때 고아성 씨 얼굴에 하수구 뻘이 검게 묻어 있고 단발머리한 옆모습이 해외 포스터로 쓰였다. 내가 봐도 ‘미야자키스럽네’라고 했다.(웃음) ‘미래소년 코난’의 라나 같은 이미지를 항상 만들어보고 싶었다. 작은 소녀 같아 보여도 파괴력이 있고 파워풀하고, 그가 코난을 구해줄 때도 많다.

10. 그 이미지들이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느끼나?

그렇다. ‘옥자’는 ‘원령공주’의 영향을 받은 것도 같다. ‘미래소년 코난’은 1980년대 중고생이 열광한 만화다. 중학교 때 매주 봤다. ‘특집, 무슨 경제를 논하다’ 이런 걸로 결방되면 화가 나서 KBS에 엽서까지 보낸 적이 있다. 결방 좀 하지 말라고. (웃음) 그때는 미야자키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좋아할 때였다. 어렸을 때 본 건 혈관 속에 흐르고 있지 않을까 한다. 오히려 대학교 이후에는 공부하듯 보는 면이 있다.

10. 이렇게 듣고 보니 머리 스타일이 ‘미래소년 코난’ 느낌이다.

‘스타일’이란 건 뭔가 세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건 그냥 방치다. 심지어 턱시도를 입어도 머리는 그냥 둔다. 오일은 못 바르겠다. 물에 젖은 개털처럼 된다. 유일한 다른 선택지로 2~3년 주기로 삭발을 한다. 버스나 지하철 타도 아무도 모른다. 하하.

10. 당신의 이야기는 장르적 재미와는 별개로 늘 사회적인 문제를 담는다. 빈과 부 가운데 스스로를 부에 가깝다고 느끼면 할 수 없는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나?

1990년대 중반, 영화학교를 마치고는 기택 집의 3분의 2 정도 되는 공간에 살았다. 지금은 극 중 박 사장 집의 5분의 1 또는 4분의 1 정도. 단독주택 아니고 아파트다. ‘기생충’의 가족이 양극을 다루니 나는 중간인 것 같다. 내 주위에는 가난한 친구가 많았다. 집이 비닐하우스인 친구도 있고, 반대로 집 바닥이 대리석인 부자 친구도 있었다. 양쪽 친구들이 다 있었다는 데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한다.

10. 사회가 공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리스펙트’, 그게 붕괴될 때 갑질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들이 생겨난다. 최소한의 리스펙트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유지되어야 할까를 생각한다. ‘기생충’에는 그 지점에 대한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나온다.

10. 황금종려상으로 한국 영화계에 큰 경사를 안겨줘 행복감을 만끽할 때이지만,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난 불안한 상태다. 신경정신과 의사도 그랬다. 당신은 약을 먹어야 한다고. 그런데 글을 써야 하는데 약을 먹으면 멍해진다. 불안해야 써지기도 한다. 시나리오는 지금도 쓰고 있다. 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썼다. 칸은 이제 다 과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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