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선, 꽃길이 아니더라도
정인선, 꽃길이 아니더라도
  • 유청희 기자
  • 승인 2018.12.2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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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인선 / 사진=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정인선 / 사진=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인선에게 꽃길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경험주의자인 그에게 세상에는 꽃길 외에도 겪어보고 싶은 일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2018년에는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이하 ‘와이키키’)에 이어 MBC ‘내 뒤에 테리우스’(이하 ‘테리우스’)에서도 20대 후반인 그가 엄마 연기를 연달아 선보였다. ‘테리우스’에서는 6년 차 프로 엄마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눈물로 밤을 지새웠단다. 그래서였을까. ‘테리우스’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수목극 1위를 지켰다.

10. ‘테리우스’가 성공적이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나?

부담감과 압박감, 작품과 역할 크기, 고개를 돌렸을 때 상대역이 소지섭이라는 것.(웃음) 뒤로 뺄 수가 없이 열심히 하게 됐다. 끝날 때 지섭 오빠가 “너 아니었으면 우리 작품 이렇게까지 잘 되지 않았을 거야. 고생했어. 고마워 애린아”라고 말씀해주셨을 때 ‘이번 생은 됐다’고 외쳤다. 나는 “오빠 옆에서 이런 현장 분위기에서 애린이를 할 수 있다면 그 누구라도 애린이를 잘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라고 답했다. 그만큼 사랑받는 현장이었고 상대 배우의 세심한 배려를 받았다.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는데, 수영도 열심히 배웠다. 옆에 수영선수 출신(소지섭)이 있으니 걱정을 덜었다.

10. 엄마 연기를 연달아했다. 젊은 여배우로선 부담이었을 텐데.

한 번 해봤다는 이유로 엄마 연기가 걸릴 건 없었다. ‘와이키키’의 윤아는 미숙한 싱글맘이었는데 ‘테리우스’의 고애린은 6년차 프로 엄마라서 확연히 다른 역할이기도 했다. 엄마 연기가 배우에게 흠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엄마였던 적이 없어서 시청자들이 연기를 가짜라고 느낄까 걱정이 컸다. 사실 내가 ‘예쁜 역할’을 맡게 된 지 별로 오래되지 않았다. 망가지는 연기가 훨씬 편하고, 한계 없이 망가질 수 있다. 그런데 딱 예쁠 정도로 망가져야 사람들이 보기 편하지 않나.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 날도 덥고, 극 중 남편도 죽고, 아이 두 명 보느라 바빠서 잡 걱정은 사라지고 상황에만 집중했다.

10. 아역배우 출신인데 공백기 이후 못 다한 연기의 한은 풀었나?

갈증은 ‘와이키키’ 때부터 풀었다. ‘테리우스’에서는 좀 더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 스스로 과제를 주면서 연기를 해왔다. 연기를 오래 해서 안 좋은 점은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씨를 썼을 때 어떤 효과가 나는지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거다. 연극 공부를 할 때 ‘단점을 부각해서 분장을 하면 캐릭터성이 살아난다’는 걸 배웠는데, 이번 작품을 시작할 때 그 문장이 많이 생각났다. 아예 단점을 다 꺼내보자고 했다. 표정도 마음껏 쓰고, 그 나이 대에 맞는 제스처나 추임새를 연기했다. 다시 사회로 나가는 경력단절 여성 고애린을 완성시키고 싶었다. 한번 해보자 싶었다.

10. ‘테리우스’ 촬영 초반에는 매일 울었다고 들었다.

제작발표회 날까지 계속 취한 것처럼 몇 달 간 찍고 있었다. 극 초반 남편이 죽으면서 우는 신이 많기도 했고, 눈물이 마를 때로 다 말랐는데 집에 가서도 계속 울었다. 첫 방송 이후부터 마음이 좀 놓였다. 롤에 대한 부담감도 당연히 있었지만, 엄마 연기에 대한 부담감이컸다. 시청자들 중에는 6년차 엄마도 쌍둥이 엄마도 정말 많을 텐데, 그 분들의 눈에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 했다.

10. 지상파 주연에 대한 부담 말고 엄마·경단녀를 대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나?

그렇다. ‘소지섭의 상대배우’라는 부담만 생각했다면 이 역할을 시작도 못했을 거다. 애린이를 설득시키면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그런데 그게 너무 어려운 거다. 엄마들, 경단녀의 고민이나 아픔을 표현해야 하는데, 경험해보지 못한 내가 그걸 겉핥기 식으로 표현할까봐.

10. 극을 통해 결혼과 육아를 체험해 보니 어땠나?

결혼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애린이 역할을 준비하면서 네이트 판에서 엄마들의 사연을 찾아봤다. 그 중에는 정말 무서운 삶도 있었다. 그래서 애린이를 향한 진입장벽이 더 컸던 것 같다. 결혼은 인간 정인선에게도 아직 겁나는 삶이다.

10. 아역배우 때와는 또 다른 성인 연기자로서의 삶은 어떤가?

아역 때부터 항상 듣던 게 ‘폭풍성장’이었다. 2018년 초에도 또 들었다. 내가 스무 살이 된 지 너무 오래돼 이제 폭풍성장은 그만해야 할 것 같은데…(웃음) 그런데 ‘테리우스’ 이후 성인 연기자로서 안착한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폭풍성장’이라는 수식어와 멀어질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됐다, 하하. 참, 예전까지만 해도 아역배우들을 보면 ‘예쁘다’ ‘귀엽다’ 했는데 이제는 엄마들이 보인다. ‘우리 엄마가 저 때 나를 저런 표정으로 봤겠구나’ 한다.

10. 드라마 끝나고 뭐하고 지냈나?

끝나고 잠을 엄청 잘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요즘 못 잔다. 새벽에도 깬다. 아직 적응 중이다. 어렸을 때는 매번 환경이 만나면 헤어지는 것의 반복이어서 한 작품이 끝날 때 아쉬움이 남아있지 않았다. 사람 얼굴도 금방 잊었다. 하지만 작품을 하면 할수록 반대로 가고 있다. ‘작품앓이’가 시작되고 있다. 현장에 대한 애착도 커지고 작품에 대한 애정도 커져서 그런 걸까. 빨리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10. 차기작은 좀 보고 있나?

보고 있기는 하다. 지금 시점에 비장하게 욕심을 내서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나에게 매력을 주는 역할이면 할 수 있다. 또 엄마 역할이라고 해도 애린과 윤아와 차별성을 가진 엄마라면 할 수 있다. 그냥 얽매이지 않고 다음 작품을 고르고 싶다. 누가 나한테 ‘엄청 예쁜 역할’도 해보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게 정말 어려운 거다. 허리도 꼿꼿이 펴야하고 표정도 절제해야 하고...

10. “꽃길은 중요치 않다”는 인터뷰를 봤다. 꽃길보다 가치를 두는 게 뭔가?

내가 경험주의자다. 슬픈 일이더라도 무엇이든 제대로 느끼는 게 중요하다. 어렸을 때 연기를 쉬었던 이유는 경험에 열등감을 느껴서였다. ‘연기를 하지 않는 아이들의 삶은 어떤 걸까’하고 질투와 슬픔을 많이 느끼는 아이였다. 그러다가 연기를 쉬고 찾은 취미가 사진과 영화였다. 간접적으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고, 내 관점을 적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항상 그 끝은 연기로 모였다.

10. 다양한 것을 경험해볼 수 있어서?

그렇다. ‘내가 정말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지금도 깨닫는다. 슬픈 일이 생기면 많이 슬퍼했으면 좋겠고,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는다면 정말 제대로 맞아서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30대가 좀 기대된다. 그때가 되면 또 차원이 다른 걸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해서. 물론 어렸을 때는 내가 스물여덟 때 되게 멋있게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별거 없는 걸 보니까 별거는 없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건 느끼지 않을까. 그런데 누구한테 뒤통수 맞는 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만큼만 당했으면 좋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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